이별이 잦으면 그리움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인가. 새파랗던 들판이 황금색으로 변하고, 추수를 끝내고 덕석을 둘둘 말았다. 겨울의 들판엔 벼 밑둥치만 지난 흔적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비록 삭벌이 삭막을 잉태했지만, 또 다른 운치를 배치했다. 찌지직찌지직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그런대로 들을 만했다. 이렇게 한 발 한발 디디면 침묵의 공간을 발시럽지 않게 걸을 수가 있었다. 그래 저 논이 그때 숙이와 땡볕에 피 몇 포기를 뽑아 들고 환호하던 환희의 논이었다. 이제 다 어디에?
인몰의 들판을 떠올리면 그 아련함에 온몸이 경련하다 못해 속울음을 울 수밖에 없었다. 영대교, 춘추원 옛 이름 그대로다. 아마 숙이는 다리를 걷고 오르막길을 올라가려면 힘들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슬픔의 가닥이다.
평범한 사람은 대부분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 같다. 손에 쥔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는 사실을 잊은 채 말이다. 그게 더 편하니까. 단지 불행이 있을 법한 음지나 먹구름 밑에서 우산 없이도 괜찮기를 속으로 바랄 뿐이다. 세월의 활송장치인 컨베이어 위에서 돌돌 구르고 있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싶지 않으며, 물속에 몸을 담근 채 그 물을 잊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조용히 흘러가기를 바랄 뿐이다. 버릴 수도, 잊을 수도 없는, 아련한 기억들이 연기가 되어가는 사실을 직시할 때의 그 허망한 분통, 울분, 원망, 포기의 혼돈 속에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을 어디다 토로할 수 있겠는가. 머리에 각인된 수많은 것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선택된 어떤 파노라마는 껌딱지가 되어 사람을 애간장의 계곡으로 밀어 넣고 추억의 골짜기에서 흐느끼고, 조용한 방황 속에 점점 희미해져 간다.
바람살
호모부커스
안개
칼의 얼굴
무위
아케론강 건너기
기도
철거되는 기억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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