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차역에서
사람들에게 표를 나누어 주던 역무원이었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표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이 표를 손에 쥐면 시간이 거꾸로 흘러간다.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새
아홉 살의 내가 살던 호랑이 발자국이 찍힌 오두막 앞에 도착한다.
750m 오지 산골에서 쉰 살 어머니와 살던 9살 아이의 이야기
엄마 얼굴은 주름이 가득하고, 머리칼은 희끗희끗하고, 허리는 조금 구부정하다. 친구들 엄마는 머리를 곱슬곱슬하게 하고 예쁜 구두를 신는데, 우리 엄마는 한복에 하얀 고무신만 신는다. 나랑 쉰 살이나 차이가 난다.
- 〈우리 엄마는 처음부터 늙어 있었다!〉 중에서
며칠 뒤, 교회에서 우리 집을 지어주기로 했다.
“엄마, 우리도 이제 우리 집이 생긴대요.”
엄마는 웃으셨다. 사흘째, 정 집사님이 찾아오셨다.
“사모님, 집 다 됐습니다. 내일 이사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동시에 되물었다.
“사흘밖에 안 지났는데요?”
다음 날 아침, 짐 보따리 하나씩 들고 교인들을 따라 깊은 산속으로 걸었다.
- 〈진흙으로 만든 우리 집〉 중에서
아침, 엄마가 급히 부르셨다.
“정미야! 이것 좀 봐라!”
눈을 비비며 마당으로 나갔다. 새하얀 눈밭 위에 내 손바닥만 한 구멍이 푹 파여 있었다. 옆에는 날카로운 발톱 자국도 선명했다.
“이거… 호랑이 발자국일지도 모르겠다.”
- 〈호랑이와 숟가락〉 중에서
“우리 정미가 종 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제가 옆에서 돕겠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 엄마를 쳐다봤다.
“그럼 권사님과 정미에게 우리 교회 종을 부탁하지요.”
목사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때 내 나이는 아홉 살이었다.
- 〈아홉 살 종지기〉 중에서
그날 밤, 호롱불 아래에서 엄마는 바늘과 실을 들고 말없이 교복을 만드셨다. 밤이 깊어도 눕지 않으셨다.
며칠 뒤, 교복이 완성됐다. 거울 앞에 서서 입어 보았다. 한복지로 만든 교복은 새 한복처럼 빳빳했다.
첫 등교 날, 엄마표 교복을 입고 스무 리 산길을 걸었다.
- 〈엄마표 교복을 입고〉 중에서
머리글: 아홉 살의 기차표
제1정거장: 쉰 살 터울 산골 엄마
우리 엄마는 처음부터 늙어 있었다!
엄마의 기도와 눈물 소나기
엄마의 쩔렁쩔렁 자장가
몽당부지깽이와 내 이름
엄마의 무게
엄마의 손수건
고향의 봄
엄마의 하얀 손가락
운동회와 보자기 도시락
쥐 꼬리를 잡은 우리 엄마
엄마의 빈 자루와 구수한 떡
제2정거장: 사흘 만에 지은 우리 집
진흙으로 만든 우리 집
호랑이와 숟가락
마당에 핀 봄 울타리
싸리대문과 설탕 봉지
지붕 위의 돌멩이
천장 위의 친구들
한 뼘 밭
전깃불이 들어온 날
제3정거장: 산골 아이와 종소리
혹인 줄 알았던 나
아홉 살 종지기
설탕보다 달콤한 종지기 월급
마지막 꼬마 종지기
선녀야, 놀자!
엄마하고 만든 꽃밭
돌사탕과 만화책
분홍색 립스틱 도장
아카시아 파마
열두 번 이사 가는 밥상
옥수수밭의 금가루
찬장 속의 노란 유혹
초록 댓잎과 빨간 잠바
하얀 날개를 달고 다녀온 세상
흙벽에 붙여둔 소중한 반쪽 껌
제4정거장: 엄마 손 꼭 잡고
달님에게 들키다!
가마솥에 녹아버린 우유
공비의 밥상
국수 꼬랑지
달콤하고 미안한 엿
댓돌 위의 운동화
두둑해진 엄마 주머니
뒷도는 거꾸로 신은 신발
라디오 속 사람들
산 너머 작은 샘터
산속에서 들려온 엄마 목소리
석유 닳는다, 불 꺼라!
엄마는 나를 두고 가지 않아
엄마의 민간요법
우체부 아저씨가 오는 길
이모 오시는 날
모독실이
제5정거장: 고무신과 책보
교과서 받던 날
공책만 한 하늘
전화 심부름
대답 없는 이름
난로 위의 도시락
손 들 수 없는 조사
볼록한 편지 봉투
엄마가 얻어온 가방
까마귀 친구가 울 뻔한 날
저축 안 하는 저축부장
째깍째깍
나뭇잎이 손바닥만 해지면
제6정거장: 스무 리 통학길
엄마표 교복을 입고
통학버스보다 먼저
세 번째 재의 뱀
외낭골 친구
제7정거장: 기차가 지나는 구름 마을
검은 마을의 아이들
우리 마을 공터
‘뻥’ 소리와 함께 시작된 명절
통리역 옥수수 장사
소풍날 나타난 아이스케키 아저씨
영화배우가 파는 껌
맺음글: 마지막 역에서, 정미가 드리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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