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거울 같은 검은 바닷물을 딛고 발가벗은 홍 마담이 춤을 추고 있다. 어느새 수정이도 춤을 추고 있었다. 또 어찌 된 일인지 춤을 추던 여인들은 사라지고 희수가 홀로 남아 춤을 추고 있다. 희수는 번쩍 눈을 떴다. 사방이 고요했다. 불현듯 지난밤 진혼굿 하듯 몸을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던 홍보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진저리를 치며 일어난 희수는 커튼을 걷었다. 한낮인데 곧 눈이 쏟아질 듯 회색 천지의 세상은 어둠침침했다. 마치 스크루지가 나오는 성극을 하려고 준비 중인 무대 같았다.
분분히 떠다니는 낱말들이 뭉쳐지질 않는다.
손녀와 손자가 3킬로, 2.5킬로, 가뿐한 아기였을 때, 어찌나 예쁘던지 아기들을 도맡아 돌봤다. 우리 얘기들은 잠투정이 심했다. 밤마다 아기를 안고 아범과 전깃불에 잠들지 못하는 도시를 돌며 아기를 달랬다. ‘잠들었다’ 싶으면, 살금살금 현관문을 여는 순간 ‘와아앙’ 하며 발버둥을 쳤다. 십여 년을 아기를 안고 동동 구르며 올빼미처럼 밤잠을 설쳤었다. 이제 큰애는 대학생, 작은애는 중학생이 되었다. 내가 손쓸 일이 줄어들었다. 나는 습관이 되어 밤에는 말똥말똥하고, 낮에 쪽잠을 잔다. 밤잠 없는 것은 소설 쓰기에는 좋은 조건이다.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소설을 못 쓰는 줄 알았는데, 아뿔싸! 머릿속이 텅 빈 듯 글 한 줄 떠오르질 않는다. 아! 나는 이제 소설은 못 쓰겠구나. 하는 상실감에 빠져들었다.
…
사람 옆에 사람이 필요하다. 노인에게는 더욱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노인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홀로 되는 경우가 많다. 외로운 노인은 어쩔 수 없이 무표정이 되어 간다. 노인은 일자리에 나와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웃는다. “어떻게 지냈어?” 상냥하고 사근사근한 김 여사 인사에 “어서 일 나오고 싶어서 날 새기만 기다렸지.” 박 여사 얼굴에 웃음기가 번졌다.
노인들은 커피 자판기 앞에서 서로 돈을 내겠다고 옥신각신하다 “나이순으로 하자.”라며 차례를 정했다. 커피 한 잔 들고 구석으로 몰려가 주저리주저리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질곡의 세월을 살아온 노인의 넋두리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
- 「책머리에」 중에서
책머리에
모자가 바람에
호야
쵸코
메리
너, 임신했니?
떡볶이 소동
산청 가는 길
블루베리
비탈길
작품 해설: 웃어, 활짝 웃으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