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태어나지 않은 셈 치고 자신이 어떤 놈이 참모습인지 찾아라던 큰스님의 화두를 받아 달랑 걸망 하나 짊어지고 우둔한 자도 슬기로워진다는 지리산으로 달려갔다. 젊음과 청춘을 외진 토굴 속에 묻어 놓고 자신이 누구인가? 산천이 몇십 번이나 변했어도 한 소식 깨우치지 못하고 헛살아온 살림살이에 풀리지 않은 화두를 붙들고 나는 아직껏 헤매고 있다.
한밤을 울리는 애절한 목탁 소리 산등성이마다 휘감아 도는데 속세에 두고 온 인연 달랠 길 없어 독경으로 때로는 삼천배로 흘린 세월은 바람같이 흘러만 갔다. 가슴속에 쌓인 8만 4천 번뇌는 밤새도록 울음 우는 풍경 소리에 서러움의 세월을 달래어 보기도 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 한 방울 그 속엔 십만 억 불국정토가 장엄하거늘 억겁을 쌓아온 업의 굴레는 어느 세월에 녹아내릴까?
세세생생 쌓아 온 번뇌 망상은 수미산을 쌓고도 남아도는데 청산에 노니는 흰 구름 바라보는 나란 놈은 누구며 어디서 왔다가 또 어디로 가고 있는가?
…
그나마 최선을 다하며 살았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돌장승이 춤을 출 때면 나도 한마디 하리라. 충실히 직책을 다한 이 세상의 야경꾼이었다고….
오늘 밤은 보석처럼 별빛이 빛나는 아름다운 시월의 밤이다. 애처로운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가을밤은 깊어 가고, 저 별들의 군무 속엔 어쩌면 나의 진면목이 있을 것만 같아 못다 푼 화두를 안고 조용히 별나라로 떠나고 싶은 밤이다.
- ‘글을 쓰면서’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