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꽃 무리가 해마다 늘어간다.
엄지손톱만 한 반달 모양의 녹 하나하나가 햇빛을 받아 선연한 핏빛을 반사한다. 흙 한 줌 물기 한 방울 없는 곳에서 피는 꽃의 생명은 어디서 오는 걸까? (중략)
아버지가 만든 손톱만 한 반달 모양의 줄칼은 생명을 앗는 칼이 아니다. 꺼져가는 생명 을 살리려는 의사의 메스도 아니다. 나라를 지키라고 왕에게서 하사받은 사인검四寅劍도 아니다. 그것은 가족을 위한 칼이었다.
<줄칼> 중 / 2020년 포항스틸에세이공모전 대상작
진정한 사유는 대상을 관찰하고 의미를 부여할 때 깊어지고 확장된다.
작가는 끊임없이 이런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수필 작가로서의 내공은 단일 소재에서 다층적인 이미지와 주제를 갈라 내는 우무로 알 수 있다. 이치운은 섬과 바다로 자연을 말할 뿐만 아니라 인생론과 인문 학적 지식까지 덧붙인다. 가족의 믿음을 사회적 메시지로 확장하는 역량도 사물을 인생 론적으로 철학적으로 해석한 결과로 여겨진다.
수필은 개인의 체험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인간의 삶은 늘 사회 현상과 문화에 영향을 받으므로 체험 서사는 존재성을 구현하는 양방향성을 가져야 한다. 이치운 작가의 삶과 문학적 지층은 참으로 넓고 깊다. 소리도에 대한 추억은 문학과 학문에 대한 사유로 발 전하고 그 변용과 해석이 한 권의 수필집에 응축되어 있다. 수필 시학과 심미적 서사를 아우른 작품이 《오늘도, 소리도所里島》라는 뜻이다.
서평 중 / 문학 평론가 박양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