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원이 본 격동의 한국정치
‘외교구락부’에서 ‘아사마 산장’까지
- 37년 국회 출입기자의 기록
1988년 무등일보 정치부 기자로 시작해 37년째 정치부 기자를 하고 있는 드림투데이 김대원 선임기자의 칼럼집이다. 김 선임기자는 치밀하고, 끈질기며, 때로는 용기 있는 기자로 통한다. 문제의식이 투철한 그는 특히 기자정신에 투철하다는 평을 듣는다. 거의 평생을 국회, 정당, 청와대를 오가며 우리나라 정치 현상을 취재한 전국적으로 몇 안 되는 기자다. 김대원 기자가 수십 년간 써서 신문에 발표해 온 기명 칼럼 중에서 90여 편을 추려서 엮었다.
이 칼럼집은 오랜 세월 한국 정치판을 발로 뛰어다니며 취재한 내용을 깊이 있는 평론으로 엮어낸 일종의 역사책이다. 특히 호남 정치를 집중적으로 취재하고 끈질기게 추적해 온 그는 광주·전남 정치사의 백과사전이라고도 불린다. 이 나라 정치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긴 정치인 중 그의 취재 그물을 피해 간 인물은 없을 정도로 그는 끈질기고 부지런하게 취재현장을 누비며 묻고 또 묻는 기자로 유명하다.
책은 15년 동안 쓴 ‘여의도 칼럼’과 ‘여의도 포커스’라는 이름으로 써 온 신문 칼럼들을 망라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적 현상을 드러내고 이면을 사정없이 파헤친 그의 칼럼은 정치권 안팎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독자들로부터 “예리한 시각과 명쾌한 논리는 그만의 독창적 ‘아우라’를 형성하며 다른 지역 정치인들에게 호남의 정서와 흐름을 이해하는 일종의 ‘창’(窓) 같은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그는 동학농민운동을 탐구해 그 분야에서의 사려 깊은 글을 많이 쓰기도 했다. 최근 북한의 우크라이나 파병을 계기로 1960년대 북한의 베트남 파병을 끄집어내 연계시킨 칼럼은 다년간의 경험과 학습이 겸비된 김 기자의 필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훌륭한 에디토리얼로 평가받는다. 독자들은 그의 칼럼을 통해서 치열한 기자정신을 지닌 한 언론인의 용기와 휴머니티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봉화산의 부엉이
― 의지할 데 없는 민초들 ‘노무현 神話’ 만들 것
# 지금도 영월 일원에선 하얀 말을 타고 화사한 용포에 검은 익선관을 쓴 단종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억울한 죽임을 당한 지 무려 5백여 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슬프도록 곱게 그려진 용안은 그가 우리 땅 곳곳에서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끈질기게 이어지는 이유를 조용히 들려준다.
4백여 년 전 이순신은 왜적뿐 아니라 선조 임금의 집요한 의심이라는 두 전선에서 동시에 싸워야 했다. 그의 몸에 박힌 적탄은 시시각각 조여드는 임금의 음험한 질투와 그에 덧붙여진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마지막 전장에서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택함으로써 이순신은 조선 백성들의 안위와 자신의 이름을 동시에 구할 수 있었다.
백여 년 전 전봉준은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곤 담담한 유언을 시로 남긴다.
“때를 만나선 천하도 내 뜻 같더니, 운 다하니 영웅도 스스로 어쩔 수 없구나,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를 위한 길이 무슨 허물이랴, 나라 위한 일편단심 그 누가 알리….” 그는 아직도 젖먹이들의 자장가, ‘새야 새야 파랑새야’로 우리 곁을 맴돈다.
# 여권에선 좌파, 야권에선 민주 세력 분열과 궤멸 책임자, 검찰과 논객들로부턴 생계형 범죄자로 몰리던 ‘바보 노무현’이 문득 산 자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라크에 파병하고 ‘한미FTA’를 추진하는 좌파라니, 맑스가 경악할 일이다. 고인이 지난 88년 7월 첫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토로한 것도 그의 유언에 나오는 ‘운명’의 복선이었을까.
정치적 경호실장 유시민은 정권, 검권, 언권에 고인이 서거 당했다고 울먹였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포괄적 살인’이라는 말도 나돈다. 그러나 노무현 죽이기는 그들 말고도 다수의 협조자와 방관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가 밉고 불편하고 싫었던 사람들이 저주의 굿판을 벌이고 이를 유포시켰을 때, 일반 국민들 다수도 그 증오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였다.
‘나도 공모한 것 아닌가’라는 죄책감은 역사상 최대 규모인 5백만의 조문 행렬로 나타났다. 그리고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울부짖음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용서하고 구원받았다. 지난 일주일여 그의 주검 앞에 서럽게 쏟아 낸 통곡과 연호, 눈물의 장송곡은 그들의 잘못을 ‘사’(赦)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노무현 죽이기의 협조, 방관자들은 이렇게 눈물로 ‘정화’(淨化)되고 있는데, 주범들의 고백과 회개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고인의 유언을 감히 입에 올리며 화해라는 가당찮은 단어부터 들먹인다.
# 고인의 죽음을 소신공양, 혹은 ‘순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위야 어찌됐든 자신 때문에 초라해진 진보 진영을 위해, 그에게 희망을 걸었다 냉소하고 좌절하는 국민을 위해, 나아가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위해 살신성인했다는 것이다. 만약 국민들의 눈물이 그간 외면당하고 무시됐던 노무현의 가치와 꿈의 회복으로 이어진다면 그건 맞는 말일 게다.
부엉이는 눈과 귀가 특히 발달된 맹금류다. 둥그렇고 큰 눈은 사람보다 수십 배 어두운 곳에서도 대낮처럼 움직인다. 소리 없이 날도록 진화된 깃털을 이용, 표적에 살며시 접근한다. 이제 적막해진 봉화산엔 가끔 부엉이가 나타날지 모른다. 세상은 그럴 때마다 천심, 혹은 민심이라고 수군거리고 어떤 이들은 역시 역사가 무섭다고 고개를 주억거릴 것이다.
사마중달에게 제갈공명은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마지막으로 공명을 이길 수 있었던 ‘오장원 전투’, 죽은 사람에게 패배한 중달은 공명을 앞지를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린다. 시절이 어두워지면 이 땅 민초들은 그들의 좌절된 염원을 참언과 ‘비결’(秘訣) 에 얹어 다시 새 세상을 꿈꿔 왔다. 마땅히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에게 ‘노무현’이라는 신화가 조용히 뿌리내리고 있다.
2009. 06. 01.
“할 말 못 할 바엔 정치 안 하는 게 낫다”
# 이낙연 전 총리가 지난 9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부산을 방문, 송기인 신부 등 대선 경선 당시 도움을 줬던 지역 인사와 지지자들을 두루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경남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꼽히는 송 신부는 이 전 총리의 후원회장을 맡은 바 있다.
이 전 총리는 또 부산 지역 전·현직 시·구의원들도 만나 부산 민주당의 현황과 지역 현안 등에 대해 청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 전 총리가 부산 방문 일정 중 김해영 전 의원을 따로 만났다는 사실이다. 김 전 의원이 현 민주당 지도부에 대해 꾸준히 쓴소리를 내온 만큼 이 전 총리가 ‘반이재명 세력’ 규합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 전 총리 측과 김 전 의원, 조응천 박용진 의원을 비롯한 이른바 ‘쇄신파’가 ‘민주당 혁신’을 고리로 이재명 대표 체제에 맞서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김 전 의원은 이 전 총리 측 싱크 탱크인 ‘연대와 공생’이 지난 4월 개최한 광주 심포지엄 연사로 거론되기도 했다.
# 민주당 비주류 움직임이야 더 지켜봐야겠으나, 당 안팎에선 이번 이낙연-김해영 독대를 계기로 오히려 김 전 의원의 ‘쎈’ 발언들이 새삼 주목받는 분위기다. 그는 2016년 총선 때 야당 험지인 부산 연제구에서 당선됐다. 당시 마흔 살. 민주당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선 최연소였다. 2018년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뒤엔 ‘이해찬 지도부’에서 유일하게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줄곧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조국 사태 당시 많은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며 당내에선 처음으로 조 전 법무장관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비례민주당’ 창당 땐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며 반대한 바 있다.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후 잠시 현실 정치에 침묵했으나 이재명 대표 측근들이 줄줄이 수사를 받기 시작하던 지난해 말부터는 다시 SNS와 언론인터뷰 등에서 쓴소리를 이어 가고 있다.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예, 예만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는 그는 “할 말도 못 한다면 정치 안 하는 게 낫다”고 일갈한다. “이 대표는 사법 리스크가 불거진 상황에서 당을 방탄에 사용할 의도를 가지고 국회의원, 당대표에 출마했어요. 그 자체가 민주당엔 치명적이에요. 하루빨리 물러나야 합니다. 야당은 대정부 견제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해야 해요. 그런데 이 대표가 있어서 국민 신뢰가 워낙 낮아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합니다. 그가 있는 한 혁신도 ‘형용 모순’이고요.”
“‘이 대표 사퇴하면 정청래가 대표 되는데 그럼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많아요. 대안이 없으면 정당 간판 내려야죠. 대중, 지지층은 (새 지도부를) 금방 또 만들어 냅니다.” “민주당은 김어준 부류와 손절해야 해요. 당을 뒤흔드는데 거리 둬야죠. 진실을 왜곡하면 더 이상 지식인이 아닌 겁니다.”
그는 민주당이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잇달아 참패하자 8년을 맡아 온 부산 연제구 지역위원장직도 내려놨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 저라도 내려놔야 했어요. 한 명이 한 지역에서 뭔가를 오래 하는 것도 좋은 게 아닙니다.”
# 물론 호남과 PK는 1990년 김영삼의 ‘3당 합당’ 참여 등 그 정치적 이력과 환경이 매우 다르다. 김해영 전 의원의 주장에 대해서도 시각이 모두 같을 순 없다. 그래도 여와 야, 주류 비주류가 치열하게 자기 논리를 갖고 공개적으로 부딪히는 ‘PK정치’가 가끔은 부럽기도 하다. 아마도 노무현과 문재인이라는 정치인도 이 같은 치열함에서 주조됐을 것이다.
2023. 07. 17.
‘마리 앙투아네트’와 ‘카노사의 굴욕’
#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지난 23일 서천 화재 현장에 도착, 약 15분 동안 윤석열 대통령을 기다렸다. 이 시간 서천은 영하 6.3도에 눈바람도 거세 한자리에 서 있기도 어려운 날씨였다는 전언이다. 윤 대통령은 어깨를 툭 치며 친근감을 표했고 한 위원장은 허리를 90도 가깝게 깊이 숙여 인사했다.
이렇게 두 사람의 갈등은 봉합 수순으로 들어갔으나 미증유의 이번 파동에서 튕겨 나온 정치적 부담과 법적 시비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일각에서 제기된 ‘약속 대련’ 가능성이 매우 낮은 이유다. 유승민 이준석 나경원 김기현… 이번엔 윤 대통령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라는 한동훈이었다. 소위 ‘친윤 그룹’이 그의 등판이 시기상조라는 동료 의원들에게 소리까지 질러 가며 만든 비대위원장이었으나 한 달도 안 돼 대통령 비서실장이 나서 사퇴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쯤 되면 윤 대통령에겐 여당 대표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당이 검찰 조직이냐”는 지적이 보수층에서조차 나온다.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데뷔가 ‘사천’이라는 것인데,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의 인천 계양을 출마 발표도 똑같은 사례였다. 그땐 왜 조용했을까.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해 온 김 위원만 타깃으로 찍혔다는 분석이 나온 배경이다.
한 위원장이 김 위원의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을 지적하기는커녕 오히려 거드는 듯한 것이 대통령실의 불만을 샀다는 관측이나 그 내용도 국민들이 걱정하실 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는 수준이었다. 이 정도 언행이 총선을 앞둔 당정 수뇌부가 충돌한 초유의 사태를 불러온 배경이라니, 이낙연 새로운미래 인재영입위원장 말대로 ‘기괴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 여당의 비대위원장은 행정부의 장관처럼 대통령의 부하가 아니다. 3권 분립의 원칙에 따른 대법원장과 국회의장처럼 고도의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선거철에 대통령이 여당의 당무에 개입하면 사법 처리될 수도 있다는 선례를 남긴 장본인은 바로 윤 대통령이었다.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지난 2018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대 총선 때 새누리당 공천에 개입했다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고, 박 전 대통령은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 모든 논란의 진원지인 김건희 여사의 디올 백 건 역시 더 복잡해졌다. ‘사과 불가론’과 ‘수사 불가피’ 주장에 더해 ‘대통령 선물’ 시비까지 불거진 것이다. 대통령실은 최근 김 여사가 받은 명품 가방을 ‘대통령 부부에게 접수된 선물’로 규정하고, ‘관련 규정에 따라 보관하고 있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여사에게 백을 선물한 최재영 목사가 미국 시민권자라 해도 공직자윤리법이 규정한 ‘외교 관례상 어쩔 수 없이 수수한 선물’로 간주할 ‘동료 시민’들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P.S. 1 :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명령을 무시하자 교황은 황제를 파문했고 황제는 알프스를 넘어 카노사로 달려갔다. 하인리히는 죄를 뉘우치는 자를 뜻하는 흰옷을 입고, 맨발로 성문 앞에 3일을 서 있었다. 황제는 교황 앞에 서서 애원했고 교황은 황제의 서약을 받아들여 사면했다. 1077년 1월의 일이다.
P.S. 2 : 이젠 그 누명이 많이 벗겨졌으나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일종의 희생양이었다. 프랑스 혁명 지도부는 당시 적국이었던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녀에게 누명을 씌웠다. 전임 루이 15세의 잇단 참전에 따른 재정 적자가 혁명의 문을 열었으며 그의 애첩 중 한 명인 뒤바리 부인이 막후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뒤바리는 혁명 와중에 단두대에 목을 내놓았다.
2024. 01. 25.
‘백년의 고독’과 전남도청 분수대
# 20세기 중반, 남미 문단을 대표했던 콜롬비아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절대 세상에 내놓지 말라”는 유지를 깨고 두 아들이 출간시킨 유작 ‘8월에 만나요’가 사후 10주기인 지난 6일 전 세계 동시 출간됐다. 마르케스는 남미의 역사, 토착 신화, 마술, 미신, 민담 등을 소설에 적용한 ‘마술적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작가. 황석영의 두 작품 ‘손님’과 ‘철도원 삼대’도 ‘마술적 리얼리즘’ 계열로 분류될 수 있다.
1967년 대표작 ‘백년의 고독’을 발표한 마르케스는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어릴 적 들었던 외할머니 얘기에서 비롯된 이 작품은 1928년 10월 6일 외할머니 친정인 ‘시에나가’에서 실제 발생한 바나나농장 대학살이 모티브다. 미국의 다국적 과일 회사와 보고타 주재 미 대사관이 개입하고 콜롬비아 군부가 자행한 이 참사로 파업노동자 800~3,000명이 기관총을 맞고 사망했으나 최초 정부 발표는 군인 1명 포함 9명 사망이었다.
‘백년의 고독’에서 시신들은 항구까지 바나나를 운반하던 열차에 실려 바닷가에 수장됐는데 유일하게 주인공만 시체 더미 속에서 기어 나와 걸어서 고향에 돌아온다. 그러나 학살 현장인 광장은 이미 정부에 의해 사라져 버렸고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 1980년 5월, 광주를 진압하고 공화국을 탈취한 신군부 반란집단도 전남도청 앞 분수대와 시계탑을 슬그머니 없애려 했다. 마지막 날 도청을 사수하다 스러져 간 시민군과 밤새 울음을 삼켰던 광주 사람들의 집단기억, 그 뿌리를 희석시키려 한 것이다. 다행히 분수대 철거는 무산됐고 시계탑만 엉뚱한 곳으로 옮겨졌다가 지난 2015년 돌아왔다. 시계탑에선 지금도 매일 오후 5시 18분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5·18 북 개입설’은 신군부가 항쟁 당시부터 흘렸던 유언비어다. 마산 3·15 시위와 부마항쟁 때도 용공 분자 배후설을 조작했던 독재 권력의 질긴 습성이다. 그들은 당연히 ‘북 개입설’을 믿지 않는다. 1987년 6월항쟁과 현재의 6공화국은 광주민주화운동의 결과다. ‘유신과 5공 때가 좋았고 전두환은 영웅’이라고 여기는 극우 세력이 5·18을 부정하고 집요하게 흠집 내려는 것도 그래서다. 도청 분수대를 없애려 했던 시도와 본질적으로 같다.
# 대통령실 황상무 수석이 지난 14일 기자들 앞에서 했다는 “(5·18 당시) 계속 해산시켜도 하룻밤 사이에 4~5번이나 다시 뭉쳤는데 훈련받은 누군가 있지 않고서야 일반 시민이 그렇게 조직될 수 없다”는 발언도 결국 ‘북 개입설’을 연상시킨다. 황 수석은 미제 개틀링 기관총이 불을 뿜는데도 우금치를 기어오르던 동학 농민군은 이해되는가. 경찰의 총알이 날아드는 경무대 앞으로 밀려들던 4·19 고교생들은 이해되는가.
만약 1980년 춘천에서 시위와 무관한 여고생이 계엄군 대검에 찔리고 신혼부부 머리가 공수부대 몽둥이에 터지는 모습을 본다면 춘천고를 다니던 황상무 학생 역시 공부만 하고 있진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공포와 인내의 마지막 선을 넘어가면 목숨까지 걸고 일어서는 법이다.
5·18 폄훼로 공천이 취소된 도태우 변호사는 탄핵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변호했고 소설가 이문열이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멘토라는 신평 변호사와 홍준표 대구시장 등도 아끼는 인물이다. 일개 정치 지망생이 아니다. 이처럼 ‘5·18 북 개입설’은 아직도 보수층 일각에서 음습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5·18의 전국화, 세계화’는 몇 걸음 더 가야만 한다. ‘5·18 공법단체’를 둘러싼 잡음이 안쓰럽고 한가해 보이는 이유다.
P.S. : 도 변호사 건은 국민의힘 내부적으론 박은식 비대위원이 해결의 단초를 열었다. 광주 동남을에 출마하는 그는 왜 여당에도 광주·전남을 대변하는 인물이 있어야 하는지 잘 보여 줬다.
2024. 03. 18.
‘테러리스트 김구’와 중추원 참의
# 뜨거웠던 8월을 돌아보니, 두 쪽으로 나뉜 광복절 행사가 기억에 남는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독립운동을 연구·기념하는 독립기념관 관장에 뉴라이트 계열 추정 인사가 임명된 것에 광복회 등이 발끈한 탓이다. 뉴라이트 사관은 상대적으로 독립운동을 격하하고 일제 시대 경제발전과 문명화를 강조한다.
노르웨이 오슬로대 박노자 교수는 “뉴라이트 운동의 본질은, 다수 시민들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요구에 의해 노무현 정권이 추진해 온 친일 진상 규명에 대한 보수 기득권층의 조직적 대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일부 전향 마르크시스트들이 논리를 제공했으며 지금은 많이 극복됐으나, 과거 서구 중심주의적 편향에 사로잡힌 일부 구미권 및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아시아적 생산 양식으로 정체된 지역은 식민화가 아니면 스스로 근대로 나아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는 것이다.
이 같은 ‘식민지 근대화론’ 시각에서 보면, 조선에 근대 자본주의를 이식하고 문명화시킬 수 있었던 세력은 일본제국 외에 없었고 따라서 친일은 ‘문명화를 위한 애국’으로 쉽게 둔갑된다는 게 박 교수의 논지다.
# 실제 뉴라이트 운동이 본격화된 건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4년 11월. 서울 명동에 운동권 출신 70여 명이 모여 자유주의연대를 출범시켰고 당시 동아일보 정치부장이던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이 ‘뉴라이트’라는 타이틀을 붙여 그대로 굳어졌다.
서울대 경제학과 안병직 명예교수의 ‘중진자본주의론’, 북한 공작원과 잠수정을 타고 월북해 김일성을 만난 김영환 씨 등이 펴낸 ‘시대정신’ 등이 이념적 기반이었고 주 구성원들은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을 외치던 전향 ‘NL파’였다. 그 후 이명박 정부에서 반짝했던 뉴라이트는 일본 우익 시각과 겹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다 고립됐고 윤석열 정부 들어 다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지난 80년대 한국의 몇몇 경제사 연구자들에 대한 일본의 파격적 연구비 지원으로부터 시작됐다.
한편 건국절 논란은 2006년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가 동아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비롯됐고, 이명박 정부가 2008년 ‘대한민국 건국 60년 기념사업위’를 출범시키면서 사달이 났다. ‘건국 60년’이라는 얘기는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 건국됐음을 의미한다. 이는 해방 후 63년간 통용되던 ‘임정 법통론’을 흔드는 논리로 1945년 광복절을 1948년 건국절로 대체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승만 전 대통령은 오히려 1919년 건국론을 내세웠고 여운형 등 중도·사회주의 세력은 1948년 건국론을 얘기했다.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고, 이제 민주 독립 국가를 재건한다’는 제헌헌법 전문 역시 최근 보수 진영이 재평가 중인 바로 그 이승만이 강력히 요구한 것이다. 건국절 논쟁에 범보수 세력조차 의견이 갈리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 ‘1948년 건국절’ 주창자들은 나름 비장하다. 특히 전향 운동권의 경우 무모함과 안쓰러움 면에선 사회주의로의 변혁을 외치던 젊은 시절 모습과도 오버랩된다.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진 않는 것 같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이래 우리 공화국이 쌓아 온 국민적 공감대와 헌법 정신을 근본적으로 바꿔 보려 한다는 점에선 소수집단 특유의 ‘컬트’ 분위기도 엿보인다.
개인적으론 개천절과 임시정부수립기념일, 광복절, 제헌절 등이 있는데 굳이 진영 갈등만 조장하는 건국절까지 제정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참고로 일본의 ‘건국 기념의 날’은 우리 개천절 비슷한 날이다. 아무튼 기관의 목적과 정반대 쪽 인물만 기막히게 골라 임명하는 이 정권 스타일이야 이미 익숙해진 풍경이긴 해도 이번 독립기념관장 인사는 유독 튄다. 보수 쪽 학계도 ‘저분이 대체 누구냐’라고 반문했다는 것이니 결과적으로 인사권자의 남루한 안목만 도드라진 셈이다.
뉴라이트 측의 독특한 시각과 연구는 자유다. 그러나 본인들 소신은 ‘식민지 근대화 기념관’ 같은 곳을 만들어 웬만하면 그곳에서 펼치는 게 좋을 듯하다. 우리 국민의 ‘반일 정신병’(일부 뉴라이트가 사용하는 비속어)이 완치되기도 전에 자신의 철학과 상반되는 기관에 슬그머니 들어간다? 최소한 학문하는 분들의 자세는 아닌 것 같다.
뉴라이트 역시 계보별로 시각이 다양하다. 그런데 각 주장들의 함의와 후과(後果)를 이해하는 사람이 ‘용산’에 과연 몇이나 될지 궁금하긴 하다. 있기는 할까? 만약 식민지 근대화론이 주류가 되고 ‘1948년 건국절’이 제정된다면 “증조부가 제국 시기 중추원 참의를 하셨다”고 대놓고 자랑하는 사람도 나타날 수 있다. ‘테러리스트 김구’(지난달 출간된 뉴라이트 계열 도서)와 달리 조선총독부를 도와 반도의 ‘문명개화’에 앞장선 애국자 아닌가.
P.S. :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강제수용소 타자수였던 99세의 푸르히너 할머니가 지난달 20일 독일 연방법원에 의해 살인방조·미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24. 09.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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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30년 출입… ‘걸어 다니는 黨史’
대한민국, ‘12·3 내란’을 진압하다
① 윤석열과 45년 만의 ‘서울의 밤’
② ‘위험한’ 군 통수권자, 불안한 대한민국
③ 尹이 당긴 ‘자살폭탄’ 스위치
④ 내란 피의자 윤석열과 ‘미시마 유키오’
⑤ 윤석열의 ‘농성전’과 보수와의 ‘악연’(惡緣)
⑥ 윤석열과 ‘페루 정변’ 그리고 ‘아사마 산장’
⑦ 윤석열의 ‘적반하장’과 ‘백골단’의 부활
⑧ 돌아온 트럼프와 ‘윤석열 재림교’ 신도들
⑨ 윤 대통령은 국민이 그렇게 우스워 보이는가?
⑩ 김장하 선생과 문형배 권한대행
21대 대통령선거
① 국민의힘과 ‘반이재명 파시즘’
② 이재명의 ‘권력의지’ 그 종착점은?
③ 국힘 경선과 ‘업둥이 한덕수’ 차출론
④ ‘보수 빅텐트’와 한덕수 대행
⑤ 김문수의 ‘진지전’(陣地戰)
⑥ 반환점 지난 선거전, 남은 관전포인트
⑦ ‘동호는 투표장에 나오지 못할 겁니다’(영상칼럼)
⑧ ‘4기 민주당 정권’과 이재명 대통령의 과제
동학혁명 130주년
① 농민군 후손들
② 전봉준 직계가족
③ 나주사람 정석진
④ 서훈(敍勳) 기점
⑤ 47년 비원(悲願)
베트남 파병, 러시아 파병
― ‘병역면제 정권’의 외교-안보 폭주 후과(後果)
① 베트남전쟁
② 호찌민과 ‘임정’
③ 청빈했던 ‘박호’
④ 이승만
⑤ 박정희
⑥ 북한 조종사
⑦ 김일성
⑧ 1968년 한반도
⑨ ‘가치 외교’
“할 말 못 할 바엔 정치 안 하는 게 낫다”
이개호 의원의 눈물
“할 말 못 할 바엔 정치 안 하는 게 낫다”
‘직을 건다’는 실세 장관들
13대 국회와 ‘박석무 사단’… 그리고 서삼석
쿼바디스… 민주당!
이용섭과 ‘제3지대 혁신신당’
역전의 명수, 군산상!
민주당 ‘재집권전략보고서’
‘남도학숙’ 30년
김대중·김영삼의 단식… 이재명의 단식
호남의 보수정치
‘이재명 체포동의안’ 독해법
‘이재명의 민주당’은 어디로
국정감사에 대한 몇 가지 ‘단상’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감상법
‘민주평통’ 사무처장의 SNS ‘유감’(遺憾)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의 경우
간담회서 슬쩍 흘린 ‘메가서울론’
‘마리 앙투아네트’와 ‘카노사의 굴욕’
‘이준석 신당’과 보수(保守)의 재구성
내년 총선도 ‘위성·참칭 정당’ 난립하나
‘들불야학’의 상록수 박기순, 그리고 김민기
이낙연과 민주당
‘이낙연 신당’ 감상법
‘73년생 강남 우파’ 한동훈
민주당 분열에 대한 ‘소회’(所懷)
‘정치 테러’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김웅과 이낙연-이준석 그리고 이상민
국회의원 50명 줄이자는 한동훈
‘마리 앙투아네트’와 ‘카노사의 굴욕’
전남도청 이전과 최창조 교수
민주당의 뜬금없는 ‘대선 패배 책임론’
1988년 ‘5·18 청문회’, 그 후 36년…
민주당 ‘공천 파동’ 배경과 전망
‘5·18 北 개입설’ 주장한 총선 후보
‘백년의 고독’과 전남도청 분수대
‘백년의 고독’과 전남도청 분수대
‘윤-한 갈등’과 한동훈의 미래
‘조국혁신당’ 돌풍에 대한 단상
모윤숙과 김수임 그리고 ‘낙랑클럽’
보수의 패배와 ‘벌거벗은 임금님’
지지율 23% 찍은 날 이재명과 통화한 尹
시대의 ‘척탄병’, 홍세화 선생을 기리며…
민형배 의원의 경우
김대중과 ‘평민연’ 그리고 우원식
‘반민특위 해체’… 75년 만의 사과 요구
신정훈 행안위원장의 1985년 기억
‘호남정치 복원’과 ‘정치 9단’ 박지원
문청(文靑) 우상호와 ‘막다른 골목’
민주당 초선, 권향엽·전진숙의 경우
여운형이 ‘절명’(絶命) 순간 남긴 말
‘테러리스트 김구’와 중추원 참의
‘팔길이 원칙’과 공영방송 BBC
유인태와 이재명 그리고 김민석
‘김경수 현상’, 그 이면(裏面)
호남과 민주당 그리고 ‘노스탤지어’
‘테러리스트 김구’와 중추원 참의
오세훈과 박형준 그리고 강기정
김충조와 ‘법창야화’ 그리고 ‘여순사건’ ㊤
김충조와 ‘법창야화’ 그리고 ‘여순사건’ ㊦
영광 재보궐선거, 1990년과 2024년 ㊤
영광 재보궐선거, 1990년과 2024년 ㊥
영광 재보궐선거, 1990년과 2024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