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살아간다
인생의 중후반에 와서 살아온 삶의 퍼즐들을 하나씩 꺼내서 맞춰 본다는 것은 참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 과거가 어떻게 되었든지 현재를 잘 살면 된다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매일매일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멍든 가슴이 아물기 전에 또 다른 상처와 마주하고, 또 어떤 사람은 괜찮은 듯이 자신의 상처를 감추고 살아간다. 나는 어디에 속할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아마 후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머무는 것이 아닌 새로운 나로 사는 것이다.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보았으며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보았다. 루소는 인간이 원래는 순수하고 자유로우며 평등하게 태어나지만 사회 속에서 왜곡시킨다고 본다. 칸트는 인간을 이성적이고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보았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 본성을 의식과 무의식의 갈등으로 설명했다. 그는 인간이 본능과 욕망을 갈구하지만 사회와의 갈등을 통해 이를 억제하고 조정한다고 말한다. 학자들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인간을 분석하지만 공통점은 바로 인간을 사회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거대하지도 않고 소박한 것인데도 쉽게 이루어지기 힘들다. 누구나 행복하고 누구나가 동등하고 평등한 사회, 이질성을 극복하고 함께 공존하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은 기다린다고 해서 저절로 올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개체인 나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 우리 개인 편견의 벽을 스스로 허물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정말 많은 편견들 속에서 살아왔고 또 편견으로 자신을 옥죄면서 살아왔다. 이제는 그런 편견의 덫에 걸리지 않게 인지와 사고가 늘 깨어 있어야 한다.
_ <에필로그> 중에서